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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둥이' 화가 김정헌 '어쩌다 보니...어쩔 수 없이'
 
이은경   기사입력  2019/11/19 [10:35]

 김종영미술관에서 초대전 2020년 1월5일까지

▲     © 국민정책평가신문

어쩌다 보니..... 아니 어쩔 수 없이.....

내가 몇 년 전 미국에 갔을 때 그 유명한 예일대에 구경 갔다가 거기에 있는 미술관에서 본 사진 작품엔 차도르를 입은 수 십 명의 중동 여인들이 얕은 강을 빈손으로 건너고 있었다. 그때 그 여인들은 ‘어쩌다 보니’ 그 강을 건너는 것일까? 아니면 ‘어쩔 수 없이’ 건너는 것일까? 그 우연과 필연 사이를 오가는 의문이 지금까지 나를 쫓아다니고 있다.  

모든 그림들은 이 ‘우연과 필연’ 사이의 우주적 변증법이다. 모든 사건은 아니 모든 현상은 이 ‘어쩌다 보니’와 ‘어쩔 수없이’ 사이를 오가는 변증법의 소산이다. 나의 그림들은 특히 그렇다.  

살면서 우리는 수 없이 많은 사람과 사건과 세상을 만난다. 그냥 지나친 그 많은 사람들은 '어쩌다 보니' 또는 '어쩔 수 없이'만나고 헤어진다. 쌩떽쥐베리가 우연히 사막에서 어린왕자를 만난 것처럼 말이다. 내가 미술을 하게 된 것도 ‘어쩌다 보니’ 미술을 만난 것이고 또 ‘어쩔 수없이’ 이 미술을 영위하고 산다. 반은 우연이고 반은 필연이다.

미술 중에서 ‘그림’은 특히 세상을 비추는 창이다. 이 그림이라는 창을 집안의 어디 벽면에 걸어두면 또 하나의 세상이 우리를 비추고 있는 셈이다. 아주 신비로운 일이다. 이 창을 통해 세상을 올곧게 비추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좋은 세상’이 이렇다는 것은 보여주고 싶어 한다. 극락세계가 다른 곳이 아니다. 바로 그림쟁이들이 만들어 낸 세상이 우리의 ‘이상세계’인 극락일 터이다. 

 

어쩌다 보니 또 어쩔 수 없이 그림을 그릴지라도 우리 위에 떠 있는 ‘달’처럼 이왕 뜬 김에 많은 사람들의 속사정을 헤아려 그려 봐야 하지 않겠는가? 정말 지구라는 별에 사는 인간들에게는 별의별 사연이 다 깃들어 있다. 이 사연들은 우주를 몇 바퀴 돌아도 끝나지 않는다. 이 사연들을 그림쟁이들이 조금이라도 같이 풀어 나간다면 우리는 ‘너와 나’ 즉 ‘우리’들의 공동체에 같이 살아갈 의미와 재미가 있지 않을까?

이번 전시의 작품들은 대부분 산업화의 과정을 거쳐 이제 페기 된, 또는 페기 될 쓰레기 같은 것들을 많이 그렸다. 특히 이번 전시는 사진작가 조춘만이 찍고 기계미학의 대가인 계원대 이영준교수가 해제한 독일의 중공업지대 ‘풸링겐 산업의 자연사’라는 책에서 영감을 받아 대형작업을 몇 점 시도한 바 있다. 또 그의 안내로 당인리 화력 발전소를 견학할 수 있었는데 이런 대형 중공업 기계들을 보면서 어쩔 수 없이 산업화 과정을 거친 우리의 사회를 시각적으로 다시 한번 성찰하는 기회를 가졌다.

산업화의 대형 시설과 기계들이 우리들의 삶을 풍요롭게 했는지 모르지만, 이 사회는 ‘어쩌다 보니’, 또 ‘어쩔 수 없이’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탄소 문명’과 산업화로 이룬 ‘성장시대’가 끝났다고 진단하는 학자들이 적지 않다.

내가 그려 온 많은 그림들은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잡다한 생각들의 결과물들이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시대와 사회가 혼란스럽고 나의 삶의 언저리가 잡다하기 때문에 나의 생각들도 ‘잡다’하다. 

생각의 파편들이 널뛰기를 하고 옛날 기억들을 소환해 현재와 미래의 일에 두서없이 연결시키기도 한다. 또 반대로 과거를 되 살려 현재와 미래를 환치하기도 한다. 삶의 변두리와 낯선 곳을 헤매기도 하고 가끔가다 정치적인 욕망의 포로가 되기도 한다. 모든 생각들은 혼란스러워 거의 정신분열증에 가깝다. 

정도를 걷는 얼론인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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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1/19 [10:35]  최종편집: ⓒ 정책평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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