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개가 너무 많다

오은서 | 기사입력 2019/07/17 [10:02]

한국에는 개가 너무 많다

오은서 | 입력 : 2019/07/17 [10:02]

 무분별한 번식이 방치·학대·유기 악순환 낳아



한겨레

 


“줄이 짧아서 편히 눕지도 못해요 . 물과 밥도 제대로 주지 않고요 . 죽은 개의 머리에 비닐을 씌워 살아 있는 옆에 방치하고 마리는 집도 그늘도 없는 허허벌판에 따로 묶여 있어요 . 여기는 대구 반야월이라는 곳이고 개들은 70 할아버지가 키우는 개들로 ‘반야월 할배 집 개들’로 불리고 있어요 . 주변 분들이 개들이 처한 상황을 개선해주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 않아요. 도와주세요.“

지난 6월25일 동물자유연대에 들어온 제보다. 동물자유연대는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곧바로 해당 지자체와 통화하여 현장을 점검해 줄 것과 최소한의 돌봄도 없는 개들을 보호자에게서 분리하는 ‘보호 조치’를 내려달라 요청했다. 보호자가 있는 동물은 관할 지자체에서 보호 조치를 내려주지 않으면 동물보호단체가 손 쓸 수 없다. 최악의 경우 처벌도 하지 못하고 개는 돈을 주고 사 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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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가받은 사람이 동물을 키운다면?


해당 지자체는 “열악한 환경에 대해서는 공감하나 현행법상 학대의 기준이 명확지 않고 검찰의 기소 또는 경찰의 수사 결과가 동물 학대로 판단하면 그때 보호 조치를 고려하겠다”는 미온적인 입장을 반복했다. 동물자유연대와 대구지역 시민활동가들이 끈질기게 설득했고 7월1일 극적으로 보호 조치가 발동되었다.

‘반야월 할배 집’ 개들과 비슷한 상황에 놓인 개는 우리 주변에 생각보다 많다. 시골에선 흔한 일이고, 도심에서도 후미지고 으슥한 곳엔 어김없이 방치된 개들이 있다. 도대체 이럴 거면 왜 키우냐고? 개가 너무 흔하고 많기 때문이다.

대부분 중성화 수술을 시키지 않으니 한 집 걸러 강아지가 계속 태어나고 태어난 강아지들은 이 집 저 집 보내져 비슷한 운명으로 살아간다. 기르는 사람 입장에서는 개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병 걸려 죽거나, 개장수에게 팔아도 암컷 한 마리만 남기면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니 개가 떨어질 날이 없다. 먹다 남은 음식물도 처리해주니 돈 들어갈 일 없이 세상 만만한 것이 이런 개들이다. 그리고 보호자가 주거지를 옮길 때 개를 버린다면, 개들은 줄에 묶인 채 굶어 죽거나 탈출해 들개가 돼 문제적 존재로 지목된다.

한겨레

 


다른 나라는 어떨까. 캐나다 온타리오주에서는 허가받은 사람만이 개를 키울 수 있고 허가는 매년 세금을 내며 갱신해야 한다. 중성화 수술하지 않은 반려동물은 세금을 두배 이상 부과해 가정에서 무분별하게 번식시키는 행위도 막고 있다. 또한 한 사람이 최대 3마리의 개만 기를 수 있도록 해 능력 이상으로 많은 동물을 키우면서 동물에게 필요한 것들을 제공하지 않거나 소홀히 하고 방치하는 ‘애니멀 호딩’을 막고 있다. 독일도 동물을 키우려면 면허를 받아야 한다.

이들 나라는 유기동물의 수가 극히 적다. 독일의 경우 법적으로 소생 불가능한 질병, 사고로 극심한 고통이 수반될 경우에만 안락사를 허용하므로 유기동물 안락사는 0%이다. 한국처럼 한 해 10만 마리가 넘는 유기동물을 구조, 보호, 안락사하는데 국민의 세금이 거의 쓰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한겨레

 


우리나라도 동물등록 대상을 모든 개로 확대해 매년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 방치 사육되는 동물 대부분이 보호자에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이니 정책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사육 두수가 줄어들 것이다. 세금은 올바른 반려동물문화가 정착되는 데 쓰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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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습을 합리화하지 말 것, 법과 정책 선행돼야


지능과 인지력이 높은 생명을 지독하고 끈질기게 괴롭히는 방치 학대는 우리 주변에서 만성적으로 자행되고 있다. 방치 사육으로 불필요한 고통을 주는 것은 동물을 좋아하고 싫어하고의 문제가 아닌, 약자를 대하는 우리 사회 전반의 도덕성 마비, 저질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살아 있는 생명을 배려하지 않고 방치하여 학대하는 것을 관습으로 합리화해선 안 된다. 세대가 바뀌고 강산이 변해야 가능한 인식 개선을 안일하게 기다릴 것이 아니라 법과 정책이 선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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