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重, 대우조선 인수 ‘메가 조선소’ 탄생 불황 시달린 조선업계 볕들날 오나

김용진 | 기사입력 2019/02/22 [11:11]

현대重, 대우조선 인수 ‘메가 조선소’ 탄생 불황 시달린 조선업계 볕들날 오나

김용진 | 입력 : 2019/02/22 [11:11]

 

매경이코노미


‘대어가 대어를 품었다’ ‘불황에 시달린 한국 조선업계가 살아날 절호의 기회다’.

새해 벽두부터 국내 조선업계에 갑작스러운 ‘빅딜’ 소식이 등장했다. 대우조선해양 최대 주주인 KDB산업은행이 국내 1위 조선사 현대중공업과 합작해 조선통합법인을 설립한다는 소식이었다. 산업은행은 지난 1월 31일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M&A)에 관한 조건부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대우조선해양 보유 지분 55.7% 전량을 신설되는 조선통합법인에 현물출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대중공업은 단숨에 조선통합법인의 1대 주주(지분 28%)로 떠오른다. 산은은 현물출자하는 대신 신주를 배정받아 2대 주주(지분 18%)가 된다. 현대중공업은 대우조선에 제3자 배정 유상증자로 1조5000억원을 지원하고, 자금이 부족하면 1조원을 추가 지원하기로 했다. 조선통합법인 산하에는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뿐 아니라 현대중공업 자회사인 현대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도 편입된다.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 인수가 성공하면 대우조선은 1999년 산업은행 주도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간 이후 20년 만에 새 주인을 찾는다. 정성립 대우조선 사장은 지난해 기자간담회에서 “국내 조선사 시황, 중국과의 경쟁, 대한민국의 산업 방향 등을 고려할 때 ‘빅2’ 체제로 가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산업은행은 현대중공업뿐 아니라 삼성중공업에도 대우조선 인수 의향을 타진했다. 입찰에 두 곳 이상 참여하지 않으면 유효경쟁이 성립되지 않아 유찰되는 국가계약법에 따른 조치다. 하지만 자구적 구조조정을 진행 중인 삼성중공업은 끝내 대우조선 인수전에 참여하지 않았다. 산은은 3월 초 이사회 승인을 거쳐 현대중공업과 본계약을 진행할 예정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현재로서는 삼성중공업보다 현대중공업 자금 여력이 더 좋다. 현대가 대우조선을 인수하는 게 시너지 효과를 내는 데 유리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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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重 대우조선 인수 배경은

▷원가 절감·수주 경쟁력 강화 기대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 인수에 나선 배경은 뭘까. 조선 수주가 점차 회복세를 보이면서 ‘규모의 경제’ 필요성이 부각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현대중공업 측은 “조선 부문에서 확실한 통합 시너지를 내고 신설될 조선통합법인을 종합 엔지니어링 회사로 키워나갈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현대중공업은 대우조선 인수가 성사되면 연구개발(R&D) 통합, 중복 투자 제거, ‘규모의 경제’ 실현을 통한 재료비 절감 등의 효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또 조선 관련 기술을 공유해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수주 경쟁력 확보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특히 조선업계에서는 현대중공업-대우조선 합병법인이 고부가가치 선종으로 꼽히는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과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분야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출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해 글로벌 시장에서 발주된 LNG 운반선(71척)과 VLCC(40척) 중 현대중공업그룹은 각각 25척, 13척을 수주했다. 같은 기간 대우조선도 LNG 운반선 18척, VLCC 16척을 따냈다. 두 회사 수주 실적을 합치면 LNG 운반선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60.6%, VLCC는 72.5%에 달한다. 사실상 이 분야 최강자로 등극한다는 의미다. 배를 건조하는 작업장인 도크 수만 봐도 현대중공업 11개, 대우조선 5개로 총 16개에 달해 ‘규모의 경제’ 효과를 누릴 것으로 기대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5년간 현대중공업, 대우조선이 침몰을 막는 데 초점을 뒀다면 앞으로는 LNG선 같은 고부가가치 선박 시장을 주도할 건조 능력을 갖추는 데 목표를 둘 것이다. 향후 10년간은 LNG가 중추적인 에너지 역할을 할 것인데 한국 조선사가 최대 수혜자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해 카타르에서만 60척의 LNG선 발주 물량이 쏟아지고 러시아 물량도 10척을 넘는 등 LNG선 발주가 급증해 합병법인 수주가 급증할 것”이라는 양형모 이베스트투자증권 애널리스트 의견도 비슷한 맥락이다.

LNG 운반선, VLCC뿐 아니라 군함, 잠수함 등 방산 분야에서도 상당한 시너지 효과가 나타날 전망이다. 국내 조선사 중 군함 등 특수선을 자체적으로 건조할 수 있는 곳은 현대중공업, 대우조선뿐이라 양 사는 그동안 출혈경쟁을 해온 게 사실이다.

이번 합병이 중국, 일본 견제를 따돌릴 절호의 기회라는 분석도 나온다. 글로벌 조선·해운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 세계 수주 잔량 1위는 현대중공업그룹(1114만CGT(표준화물선 환산 t 수), 점유율 13.9%)이다. 2위인 대우조선해양 수주 잔량(584만CGT, 7.3%)까지 합하면 3위 일본 이마바리조선(525만CGT, 6.6%)과 비교해 무려 3배 이상 차이가 벌어진다. 합병법인의 글로벌 조선 시장점유율도 단숨에 21%를 넘을 전망이다.

M&A 시점도 나쁘지 않다는 평가다.

대우조선은 1999년 대우그룹 해체와 함께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산업은행이 2000년 출자전환을 통해 대우조선 대주주로 등극했다. 이후 산업은행은 수차례 매각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사이 대우조선은 ‘돈 먹는 하마’로 전락했다. 산은은 2015년에만 대우조선에 4조2000억원을 지원했고 이후에도 매년 수조원씩 쏟아부으면서 10조원 넘는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재계에서는 “산은이 ‘대마불사’ 논리에 빠져 수조원 혈세만 쏟아붓고 구조조정 성과는 내지 못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가 달라졌다. 조선 업황이 회복세인 데다 정부 지원 효과 덕분에 대우조선은 2017년 7330억원 영업이익을 냈다. 지난해 영업이익 전망치도 8000억원에 달한다. 이동걸 회장은 “한때 5000%가 넘던 대우조선 부채비율을 200%대로 낮췄고 영업이익도 흑자로 반전하는 성과를 냈다. 민영화에 나설 적기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현대중공업 역시 분위기가 괜찮다. 지난해 163척, 140억달러 수주 실적을 올려 연간 목표치(132억달러)를 초과 달성했다.

인수금액 거품도 많이 빠졌다.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인 2008년 한화그룹은 대우조선을 6조3000억원에 인수하려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끝내 취소했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은 최대 2조5000억원가량 유상증자로 대우조선을 품에 안을 수 있게 됐다.

넓게 보면 현대중공업, 대우조선, 삼성중공업이 주도해온 ‘빅3’ 체제에서 ‘1강 1중(현대중공업+대우조선, 삼성중공업)’ 체제로 바뀌면서 한국 조선업 발목을 잡아온 ‘제 살 깎아 먹기’ 경쟁도 점차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조선업계가 극심한 불황에 빠지자 한국 ‘빅3’ 업체마다 출혈경쟁에 나서 신조선가가 떨어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저가 수주 관행이 사라져 실적 회복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기대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사실 조선업계가 호황일 때도 국내 업체 간 선가 인하 경쟁은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대형사 2곳이 합병한 만큼 제 살 깎아 먹기 식의 저가 수주 경쟁은 점차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김홍균 DB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이번 인수로 시장 지배력 강화, 수주 경쟁력 확보 효과를 노려볼 만하다. 현대중공업그룹 차원에서도 현대글로벌서비스, 현대일렉트릭 등 자회사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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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추진하면서 국내 조선업계에 지각변동을 불러올지 관심이 쏠린다. 사진은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위)와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현대중공업 제공,

 


▶과제는 없나

▷LNG 운반선 수주만으론 한계

물론 풀어야 할 과제도 만만찮다. 먼저 경영난에 시달리는 현대중공업 스스로 초대형 M&A를 단행할 만한 여력이 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세계 1위 조선사 현대중공업은 2014년과 2015년 2년 연속 1조원 넘는 적자를 낸 후 극심한 수주절벽에 시달려왔다. 이후 계열사 매각, 대규모 인력 감축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진행한 덕분에 겨우 분위기가 살아났지만 아직 안심할 때는 아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한 해 4736억원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분기별로 보면 지난해 3분기 반짝 흑자를 내며 연간 흑자전환 기대가 컸지만 4분기 2000억원 넘는 손실을 기록해 결국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당기순손실도 2017년 934억원에서 지난해 6327억원으로 급증했다. 업계 관계자는 “M&A 시장에서는 우량 기업이 어려운 기업을 떠안는 게 맞는데 현대중공업이 확실히 턴어라운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글로벌 조선 업황이 또다시 침체에 빠질 경우 합병법인이 지금보다 더 큰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귀띔했다. 이 때문에 조선업계 안팎에서는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을 인수하더라도 우량 사업인 상선, 특수선 부문만 주력하고 해양플랜트 등 부실 사업은 방치하거나 매각에 나설 것이라는 소문도 솔솔 나온다.

중국, 일본 등 경쟁국 견제도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글로벌 조선 1, 2위 업체인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이 합병하려면 국내뿐 아니라 유럽, 미국 등 전 세계 경쟁당국의 기업결합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특히 주요 경쟁국인 중국, 일본이 합병에 제동을 걸 우려가 크다. 자칫 독점 논란을 불러올 가능성도 높다. 양형모 애널리스트는 “국내 공정위 기업결합 심사는 통과하겠지만 현대중공업 독과점 문제로 미국, EU, 중국, 일본 등 해외 경쟁국 중 한 곳만 반대해도 M&A가 무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각종 논란을 딛고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 인수에 성공하더라도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단순히 덩치만 커졌을 뿐 컨테이너선, LNG 운반선 중심의 영업구조가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일례로 두 회사가 주력해온 LNG 운반선 발주 물량이 끊어질 경우 자칫 수주절벽을 맞을 우려가 크다. LNG선 수명은 보통 20년 정도로 다른 선박에 비해 교체 주기가 길다. 카타르, 러시아 등 주요 LNG 수출국의 운반선 발주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 경우 당장 수주 대체 물량을 찾기 어렵다. 양 사 노조가 합병을 반대하는 것도 LNG선 건조가 끝날 경우 일감이 사라져 인력 구조조정 우려가 크다는 전망 때문이다.

그나마 과거 한국 조선업 효자 물량이었던 벌크선, 컨테이너선 등은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조선사에 밀린다. 한국 조선업이 지난해 중국을 제치고 반짝 ‘글로벌 수주 1위’를 탈환했지만 올 들어 1월 수주 물량이 또다시 중국에 밀려 안심할 수 없는 분위기다.

한편에서는 인수 과정에서 빠진 삼성중공업 운명이 위태로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주요 사업 구조조정을 해온 삼성그룹이 이참에 비핵심 사업인 조선업 철수를 검토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삼성중공업은 2017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4000억원 넘는 영업적자를 냈다. 중소 조선사도 사정이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한진중공업이 필리핀에 세운 수비크조선소 부실 여파로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수비크조선소는 2017년에만 2355억원 영업손실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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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업 경쟁력 회복하려면

▷친환경 선박 등 차별화된 기술 필요

한동안 한국 조선업이 세계 시장을 주름잡았지만 요즘에는 경쟁국과의 기술 격차가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업은행의 ‘한중일 조선산업 경쟁력 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조선산업 경쟁력을 100으로 볼 때 일본은 99, 중국은 88로 나타났다. 그나마 중국보다 앞선 것으로 평가받던 고부가가치 선박 기술 격차도 점차 축소되는 모습이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한국과 중국의 고부가가치 선박 기술 격차가 2014년 3.6년에서 지난해 3.4년으로 갈수록 좁혀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주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아직까지는 우리 기술력이 중국보다 높지만 2020년 이후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가능성이 높다. 중국 정부가 글로벌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 점유율 40%를 목표로 제시한 만큼 2020년 이후에는 중국 점유율이 한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올라설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 중국 정부는 ‘중국제조 2025’를 통해 조선산업을 10대 중점 육성 분야로 정했다. LNG, 크루즈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과 해양플랜트 경쟁력 강화에 힘쓰는 중이다. ‘수출입 화물은 중국 선박으로 수송하고 이 선박은 중국 조선소에서 건조한다’는 ‘국수국조’ 정책까지 앞세워 전폭적인 조선업 지원에 나섰다. 저렴한 인건비를 무기로 선박 가격 경쟁력을 높인 데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CSSC와 CSIC 합병을 추진하면서 ‘조선굴기’에 나섰다. 두 조선사가 합병할 경우 연매출이 5080억위안(약 86조원)으로 한국 대형 조선 3사 매출 합계의 두 배를 웃돈다. 일본 역시 1위 업체 이마바리조선이 미나미니혼조선을 인수하는 등 덩치 키우기에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전문가들은 한국 조선업이 옛 명성을 회복하려면 대대적인 R&D 투자를 통해 친환경 선박, 스마트십 등 차별화된 기술력을 갖춰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2020년 국제해사기구(IMO)가 시행하는 황산화물 강화 규제로 친환경 컨테이너선 발주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IMO 조치로 2020년부터 글로벌 선사는 운용 선박 연료유의 황 함유량을 기존 3.5%에서 0.5%까지 낮춰야 한다. LNG 운반선에서 벗어나 친환경 컨테이너선 등 수주 선종 다변화에 나서야 한다는 주문이 곳곳에서 나오는 이유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 합병으로 매출 규모가 커지고 저가 수주 경쟁이 사라질 수 있지만 문제는 근본적인 조선업 경쟁력이 살아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중국, 일본 추격을 따돌릴 만한 기술 경쟁력이 부족한 만큼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 첨단 ICT 기술을 융합해 고부가가치 선박 기술 격차를 더 벌려야 한다.” 한 전문가의 일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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