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누가 죽인건가" vs "증거 기반 판결"..이대 영아사망 판결 '후폭풍'

서정태 기자 | 기사입력 2019/02/22 [10:48]

"대체 누가 죽인건가" vs "증거 기반 판결"..이대 영아사망 판결 '후폭풍'

서정태 기자 | 입력 : 2019/02/22 [10:48]

 "허탈하고 참담합니다. 우리 아이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은 어디서 물어야 합니까? 대형 병원에서 4명의 신생아가 목숨을 잃었는데, 결국 병원은 책임이 없다는 거잖아요."

21일 오후 2시 30분쯤 법원에서 피고인들에 대한 무죄 판결이 선고되자 재판을 지켜보던 ‘하빈이 아빠’는 눈물을 흘렸다.

지난 2017년 12월 이대목동병원에서 신생아 4명이 감염질환으로 사망했다. 역학조사 결과 ‘오염된 수액’이 원인으로 지목됐고, 의료진 7명이 기소돼 이날 첫 재판 결과가 나왔다. 1심 판결은 ‘의료진 7인 전원 무죄’. 법원은 "의료진이 감염 방지를 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점은 인정한다"면서도 "관리 부실이 신생아 사망과 직접적 연관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사고가 난 뒤부터 유가족대표를 맡아온 ‘하빈이 아빠’ 조모씨 등 유가족들은 이날 재판 결과에 망연자실해했다. "그 사람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징역을 살고 이런 건 크게 신경을 안 썼어요. 우리 아이들의 죽음에 병원이 책임이 있다는 것을 법원이 밝혀주길 바랐던 것 뿐이었는데…"

조선일보

21일 서울남부지법에 출석하는 이대목동병원 주치의 조수진 교수. 서울남부지법은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수진 교수 등 7명에게 전원 무죄 판결을 내렸다.

 


◇유족 "대형병원서 신생아 4명 죽었는데 병원 책임 아니라니…"

어린 자녀를 둔 엄마들 사이에서는 비판의 소리가 높다. 생후 8개월 아이를 둔 이수미(33)씨는 "아이가 감기만 걸려도 전전긍긍 하는 게 엄마인데, 신생아가 죽는 사고가 나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면 병원이 문제를 개선하겠느냐"며 "의료과실을 인정하지 않는 선례를 남긴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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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남부지법은 21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대목동병원 주치의 조수진 교수 등 7명에게 전원 무죄 판결을 내렸다. 사진은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

 


생후 5개월 아이를 둔 이민들레(26)씨는 "면역력이 부족한 신생아는 믿고 의지할 데가 병원밖에 없다"며 "병원이 부모에게도 처방 내용을 알려주지 않는데, 이제 병원을 마음 놓고 갈 수 있겠느냐"고 했다. 이어 "출산장려정책이라고 돈만 뿌리지 말고 마음놓고 다닐 수 있는 병원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육아 커뮤니티에서도 비슷한 반응이 쏟아졌다. 국내 최대 주부 커뮤니티인 ‘레몬테라스’에서는 "법이 약한 사람들 편이 아니니 답답하다" "아무도 죄지은 사람이 없다는데 죽은 아이는 무슨 죄를 지어서 살아보지도 못하고 져버렸나" 등 판결에 대한 비판이 잇따랐다.

◇의료계 "증거에 입각한 합리적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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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후 3시쯤 무죄 선고를 받은 이대목동병원 관계자가 서울남부지법을 나서는 모습.

이날 법정에서 다른 종류의 눈물을 흘린 사람도 있었다. 이날 피고인석에 있던 주치의 조수진 교수와 수간호사, 간호사, 전공의 등 의료진 7명은 1심 판결이 나오자, 눈물을 흘렸다. 재판이 끝나자 조 교수는 고개를 숙인 채 인터뷰 요청을 사양하고 법정을 떠났다.

의료계는 "고의성 없는 의료 사고에 대한 책임을 ‘증거 여부’로 물었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을 반기고 있다.

재판을 방청한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은 "명백한 증거주의에 입각해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는 점에서 의료계에서는 환영의 뜻을 표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고의나 고의에 준하는 중과실, 의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의료행위 외의 사유로 의료진이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면 안 된다"며 "이번 판결을 근거로 의사의 의료행위가 원칙적으로 형사처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법 제정을 정부에 적극적으로 요구할 것"이라고 했다.

홍은석 대한응급의학회 이사장도 "의료진도 인간이기 때문에 실수할 수 있다"며 "형사처벌의 선례가 생기면 의료진은 방어적 진료를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조 교수를 변호한 법무법인 천고의 이성희 변호사는 "이번 재판 결과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가 잘못됐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2년 걸리는 역학조사를 10일 만에 해치웠으니 증거능력이 있다고 보기 힘들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관리 감독 등의 책임이 없는 전공의를 주범으로 잡아 기소한 것은 ‘마녀사냥’과 다름없다"며 "이번 일은 멸균 조작실 등을 만들지 않은 병원 측의 제도적, 경영의 문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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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 직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무죄 판결을 내린 판사를 해임해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자는 "이 나라에서 아이를 낳아 키울 수가 없다"면서 "피해자만 평생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이 나라의 사법부 판결은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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