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빵순이들은 ‘비건’ 빵집에 간다

이은경 | 기사입력 2019/08/13 [09:07]

요즘 빵순이들은 ‘비건’ 빵집에 간다

이은경 | 입력 : 2019/08/13 [09:07]

 

달걀·버터 없고, 탄수화물 줄이고

채식주의 아니어도 ‘건강식’ 인기

다이어트 중에도 디저트 먹는 맛

고소한 빵 냄새와 쇼윈도에 놓인 먹음직스러운 빵과 케이크. 여느 빵집과 다름없는 풍경이다. 그런데 낯선 문구가 보인다. ‘NO 밀가루·버터·달걀·우유.’ 심지어 어떤 곳은 ‘설탕도 쓰지 않는다’는 문구가 붙어있다. 그동안 빵과 케이크를 구성하는 필수 요소로 여겨왔던 재료들이 단 하나도 들어가지 않는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이게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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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식생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비건 베이커리'가 주목받고 있다. 채식주의자가 아니더라도 한 번쯤 경험해보고 싶은 빵의 한 종류로 비건 빵이 떠올랐다. [사진 일쁠루수파리]

 



비건 베이커리라면 가능하다. 비건(vegan)은 엄격한 채식주의자를 뜻한다. 고기는 물론, 달걀과 우유도 먹지 않는다. 금하는 음식의 종류에 따라 지칭하는 단어에는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고기는 지양하고, 채식 위주의 식생활을 하는 이들을 칭한다. 비건 베이커리는 동물성 재료, 즉 달걀과 우유, 우유로 만드는 버터 등이 들어가지 않는 빵·과자·케이크 등을 판매하는 상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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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크림 치즈를 올린 당근 시나몬 컵케이크. 일반 생크림보다 쉽게 녹는 비건 크림은 먹기 직전 케이크 위에 올려 먹는다.

 



여기에 하나 더. 글루텐을 없앤 곳도 많다. 글루텐은 밀가루 등 곡류에 존재하는 단백질이다. 특히 흰 밀가루에 많다. 빵의 식감을 쫄깃하게 만들지만, 글루텐에 민감한 사람의 소화 흡수율을 떨어트리고 속을 더부룩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밀가루 등 곡물이 동물성 재료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비건 베이커리에서는 글루텐 함량이 높은 흰 밀가루를 사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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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베이커리는 밀가루 대신 현미나 쌀가루, 버터 대신 식물성 오일, 정제 설탕 대신 비정제 설탕을 사용한다. [사진 일쁠루수파리]

 



서울 종로구 익선동에 위치한 ‘앞으로의 빵집’은 흰 설탕 대신 코코넛 설탕을 쓰고, 두유와 코코넛 오일을 섞은 비건 버터를 빵에 넣는다. 이곳에 진열된 당근 시나몬 컵케이크에는 생크림이 올라가 있지 않다. 주문하면 캐슈너트와 레몬즙·두유 등을 섞어 만든 비건 크림치즈를 그 자리에서 올려준다. 밀가루 대신 현미 가루로 컵케이크를 만든다. 박윤아 대표는 “버터나 우유 등 풍미를 담당하는 식재료를 넣지 않기 때문에 당근 시나몬 케이크라면 당근 등 원재료를 듬뿍 넣어 풍미를 살리는 것이 요령”이라고 했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비건 베이커리 ‘피봇’은 빵을 만들 때 달걀·버터·우유 대신 현미유와 두유를 사용하고, 흰 밀가루 대신 우리 밀 통밀을, 정제 설탕 대신 마스코바도 같은 비정제 설탕을 사용한다. 달걀을 넣은 밀가루 반죽의 점도를 내기 위해 마를 갈아 넣거나 두부를 사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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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미 쑥 무화과 파운드, 현미 고구마 오디 파운드 등 건강한 재료를 접목시킨 비건 빵들이 많다. [사진 피봇]

 



요즘 비건 베이커리의 인기는 꽤 높다. 사진 기반 SNS인 인스타그램에서 ‘비건 베이커리’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3만5000개의 게시물이 등장한다. 시중 비건 베이커리의 개수도 늘어났다. 서울 목동에서 비건 빵 클래스를 열어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는 ‘두루미 키친’의 안수지 대표는 “몇 년 전만 해도 비건 빵집을 수소문해서 겨우 찾아다녔을 정도”라며 “지금은 서울의 유명한 비건 베이커리만 스무 곳이 넘고, 새로 생긴 곳까지 하면 거의 50여 곳이 넘는 것 같다”고 했다.

비건 빵을 배우려는 사람들도 많다. 비건 빵 클래스를 운영하는 ‘그러케이크샵’의 고은별 대표는 “월 단위로 커리큘럼을 짜는데 7월 수업이 4월에 마감됐을 정도”라며 “특히 지난해 여름 이후로 수업이 빠르게 마감되는 등 비건 빵에 대한 관심이 커졌음을 느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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깻잎 스콘, 감자 버섯 쿠키 등 통밀가루와 채소를 활용한 비건 베이킹을 가르치는 그러케이크샵. 사진은 채소를 활용해 만든 비건 키쉬. [사진 그러케이크샵]

 



비건 베이커리에 들르고, 비건 빵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모두 채식주의자는 아니다. 채식 식당은 느리게 늘어나는 반면, 채식 베이커리가 빠르게 늘어나고 흥행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피봇’의 김민정 대표는 “찾아오는 이들 중 실제 채식주의자 비율은 20% 정도도 안 되는 것 같다”고 했다. ‘두루미 키친’에서 비건 빵을 배우고 있는 대학생 윤효원씨 역시 비건은 아니지만 "빵을 워낙 좋아하는데 빵만 먹으면 피부 트러블이 올라와 비건 빵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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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키친의 1:1 수업. 최근 비건 베이킹 클래스를 문의하는 수강생들이 많다. 유지연 기자

 



비건 베이커리는 다이어터들의 성지로 꼽히기도 한다. 생크림이 올라간 케이크보다 비건 크림이 올라간 케이크, 밀가루보다는 현미 가루로 만든 빵, 버터보다는 식물성 오일로 만든 쿠키가 죄책감이 덜하기 때문이다. 비건 베이커리는 다이어트를 하더라도 빵만큼은 참을 수 없는 ‘빵순이’들의 대안이 되기도 한다. 서울 이태원의 비건 베이커리 ‘써니브레드’에는 세 가지 종류의 비건 케이크가 있다. 글루텐 프리 제품(GF), 동물성 재료를 배제한 비건 제품(VG), 마지막으로 탄수화물 비중을 낮춘(LC·low carb) 제품이다. 글루텐 프리, 비건 제품 모두 인기지만 저탄수화물 제품의 경우 식이조절을 해야 하는 당뇨 환자들이 많이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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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칼로리의 대명사인 '레드벨벳' 케이크의 비건 버전. 글루텐 프리에 저탄수화물 레시피를 적용했다. [사진 써니브레드]

 



비건 빵 특유의 담백함, 은은한 단맛 등을 매력으로 꼽는 이들도 상당하다. 무엇보다 비건 빵 자체의 맛이 좋아졌다. 서울 성동구에서 비건 빵 클래스를 운영하는 ‘일쁠루수파리’의 임아영 대표는 “현재 인기 있는 비건 빵집의 특징은 건강하면서도 맛있는 빵을 추구하는 것”이라며 “수요가 늘고, 레시피를 연구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모르고 먹었을 때 비건 빵인지 모를 정도로 맛있는 빵이 나오고 있다”고 했다. ‘써니브레드’의 송성례 대표는 글루텐 프리 비건 빵을 만들기 위한 현미·백미·전분 가루의 배합 비율로 특허를 받았다. 송 대표는 이 가루 배합을 활용해 밀가루(박력분)와 거의 일치하는 맛을 낸다. 글루텐 없이도 촉촉한 비건 빵을 만들 수 있는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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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밀이나 토종밀(앉은뱅이밀), 통밀가루 등을 사용해 비건 빵을 만들기도 한다. [사진 에너지키친]

 


무엇보다 건강한 음식에 대한 선호가 뚜렷해졌다. 먹는 음식 만큼은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보다 가치 소비를 즐기는 이들이 늘어났다는 얘기다. ‘써니브레드’ 송 대표는 “단지 허기를 채우기 위해 음식을 먹는 시대는 아니다”라며 “음식에 담긴 가치를 소비하기에 비건 베이커리가 주목받는 것”이라고 했다. 로푸드 전문가이자 비건 빵 클래스를 진행하는 ‘에너지키친’의 경미니 쉐프는 “동물 복지나 환경보호의 측면에서 비건 빵을 선호하는 이들도 물론 있지만, 그보다 건강 측면에서 비건 빵을 선택하는 이들이 점차 늘어날 것”으로 봤다.

채식을 하고 안 하고는 선택의 문제다. 하지만 비건 베이커리는 선택의 문제라기보다 취향의 문제에 가까워졌다.

정도를 걷는 얼론인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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