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보다 빠른 경기하강에 놀란 한은…1년새 4번 전망치 낮춰

김용진 | 기사입력 2019/04/19 [09:10]

예상보다 빠른 경기하강에 놀란 한은…1년새 4번 전망치 낮춰

김용진 | 입력 : 2019/04/19 [09:10]

 

매일경제

 


수출, 투자, 소비 트리플 하락이다. 한국은행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유지할 것이라는 당초 시장의 예상을 깨고 전망치를 줄줄이 내렸다. 한은의 연간 성장률 전망치는 정부(2.6~2.7%)와 KDI(2.6%)보다도 낮은 2.5%다. 이 같은 조정이 시장의 금리인하론을 더 부추길 수도 있지만, 현재 경기 둔화의 정도가 그만큼 더 심각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정규일 한은 부총재보는 18일 "반도체 경기가 빠른 속도로 하락하면서 1분기 수출과 설비투자가 예상보다 좋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음주 발표하는 1분기 국내총생산(GDP)은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한은은 올해 상품수출 전망을 2.7%로, 지난 1월 전망치(3.1%)보다 0.4%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올해 수출의 순성장 기여도는 지난 1월 전망 당시 1.1%포인트였지만, 이번 전망에서는 1.0%포인트로 떨어졌다. 실제 올 들어 수출은 계속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다. 전년 동기 대비 수출은 지난 1월 -6.2%, 2월에는 -11.4%, 3월에는 -8.2%를 찍었다. 결정적인 건 지난 2월에 수출 물량마저 마이너스로 돌아선 것이다. 이날 이주열 총재는 "1분기에는 수출이 물량 기준으로도 증가세가 크게 낮아졌다"며 "하반기 가면서 점차 회복되겠지만, 회복돼도 연간으로 보면 물량 기준으로 수출 증가율이 지난해보다는 좀 낮을 걸로 본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한은은 경상수지 흑자 전망치도 지난 전망 때 690억달러에서 665억달러로 줄였다.

수출 부진이 어느 정도 예상된 흐름이라면, 내수의 두 축인 소비와 설비투자가 당초 전망보다 크게 둔화됐다. 이게 전체적인 성장률 전망치를 끌어내렸다. 한은은 지난 1월만 해도 설비투자가 2.0% 늘 것이라고 내다봤지만, 이번 전망에서는 0.4%로 1.6%포인트나 낮췄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한은 예상보다도 설비투자를 더 부정적으로 전망했다. 강현주 자본시장연구원 거시금융실장은 "설비투자는 결국 대형 제조업체의 수출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며 "반도체 경기가 언제 회복될 거냐에 대해서는 설왕설래가 많지만, 회복된다 하더라도 작년과 재작년만큼은 아닐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수출여건이 악화된 상태에서 주력 제조업이 반등 모멘텀을 찾긴 쉽지 않기 때문에 설비투자는 작년과 보합 수준(-1.6%)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도 "세계 경기와 내수 등으로 미뤄봤을 때 설비투자가 좋아질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0.3% 수준으로 예측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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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는 그간 한은이 '완만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고 자신하던 부분이다. 하지만 이날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는 "소비 증가세가 주춤한 모습을 나타냈다"는 표현이 등장했다. 이와 함께 한은은 올해 소비를 0.1% 하향 조정된 2.4%로 전망했다. 자영업 업황 부진 등으로 가계소득 개선세가 둔화됐기 때문이다.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 전망도 1.1%까지 하향 조정했다. 저물가에, 저성장, 소비 둔화까지 겹치면서 일각에서 디플레이션도 제기했다. 하지만 이 총재는 "앞으로 임금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고 공급 측면의 물가 하방압력도 완화되면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대로 높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며 논란을 일축했다. 그러나 저물가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한은의 물가안정목표 수준(2%)에 계속 미달하고 있는 현상을 근거로 전문가들은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한은 주장처럼 단순 공급 요인뿐만 아니라 수요 부진이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공급과 수요 부진 측면이 모두 있다"며 "보통 잠재성장률보다 물가가 많이 낮으면 수요 측면의 영향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토록 부정적인 전망을 늘어놓으면서도, 한은은 1월 전망 때에 이어 이번에도 '상저하고(上低下高)'를 주장했다. 예를 들어 설비투자는 전년 대비 상반기에는 -5.3%에 그치지만, 하반기에는 6.4%로 대폭 반등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건설투자도 상반기에는 -6.4%지만, 하반기에는 -0.3%까지 올라올 것으로 내다봤다. 한은 전망대로라면 수출도 1.4%에서 3.9%로 확대된다.

게다가 한은은 이번 전망치에는 정부와 정치권이 추진 중인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효과가 반영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확장적인 재정정책에 힘입으면 경제가 반등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놓은 것이다. 하지만 하반기 추경 효과에 대한 전문가들 시선은 물음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강현주 연구위원은 "추경은 미세먼지와 산불 대책 등에 대한 비용으로 대부분 편성될 것으로 보여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한은이 올해 경제전망을 또다시 낮춰 잡으며 스스로 '경제 낙관 기관'임을 자인하다보니, 이번에 내놓은 2.5% 수치에 대해서도 장밋빛 전망에 근거한 수치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한은은 작년 4월에 2019년 경제성장률을 2.9%로 예상한 뒤, 이날까지 3개월마다 총 네 차례에 걸쳐 0.1%포인트씩 하향 조정하고 있다. 이승석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지난번 한은의 2.6% 성장 전망에도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 효과와 상반기 전 세계 반도체 경기 악화가 이미 반영돼 있다"며 "문제는 하방 리스크보다 상방 리스크에 대한 기대와 평가를 더 크게 한다는 점"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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