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사편찬원, 서울 속 외국인들 활동공간을 조명한 《서울 내 외국인 집단활동지의 역사》 발간

개항기~현대까지 서울 속 외국인들의 주요 활동공간의 역사를 밝힌 ≪서울 내 외국인 집단활동지의 역사≫ 발간

오은서기자 | 기사입력 2022/04/15 [16:58]

서울역사편찬원, 서울 속 외국인들 활동공간을 조명한 《서울 내 외국인 집단활동지의 역사》 발간

개항기~현대까지 서울 속 외국인들의 주요 활동공간의 역사를 밝힌 ≪서울 내 외국인 집단활동지의 역사≫ 발간

오은서기자 | 입력 : 2022/04/15 [16:58]

≪서울 내 외국인 집단활동지의 역사≫ 표지


[정책평가신문=오은서기자] 서울역사편찬원(원장 이상배)은 3월 31일, 서울역사중점연구 제12권 ≪서울 내 외국인 집단활동지의 역사≫를 발간했다.

서울역사편찬원에서는 서울 역사의 미개척 및 취약 분야 연구를 장려하고자, 2016년부터 '서울역사중점연구' 시리즈를 기획하여 편찬하였다. 신진연구자의 발굴을 통하여 서울역사 전문가의 저변을 꾸준히 확대해 가고 있으며, ≪서울 내 외국인 집단활동지의 역사≫는 그 시리즈의 제12권으로 발간된 것이다.

수록된 총 6편의 서울 내 외국인 집단활동지에 관한 연구논문은 20세기 이후 서울에 터전을 잡은 외국인들의 주요 활동공간을 다양한 시각에서 조명했다.

먼저 이연경(인천대 연구교수)의 ‘개항 이후 서울 서부지역의 서양인 거주지와 연희전문학교의 모범촌 건설’을 통해서 서양인들의 거주공간의 확장과정을 살펴보았다.

개항기 이후 정동에서부터 시작된 서양인들의 거주공간은 일제강점기 서대문 밖 냉천정(오늘날 냉천동)과 죽첨정(오늘날 충정로 일대)에서 경성부 밖 연희면(오늘날 연희동) 일대로까지 확장됐다.

한편 연희전문학교 초창기 마스터플랜을 통해 캠퍼스와 부근의 이상촌을 마련하여 학생과 교직원뿐만 아니라 기혼 학생들의 가족들에까지 기독교 교육과 서양식 생활을 제공하고자 함으로써 서양인 선교사들이 이상향으로 삼았던 마을의 모습을 밝혔다.

두 번째로 양지혜(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의 ‘일제강점기 서울 내 일본인 거주공간의 형성과 거주양상’에서는 일제강점기 일본인 거주지의 변화 과정과 거주공간의 이면을 다뤘다.

그간 일제강점기 서울을 민족·계층의 측면에서 북촌과 남촌이라는 이분법적 시각을 강조했었다. 하지만 일본인 거주자가 증가함에 따라 일본인과 조선인의 접촉지대는 확장될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본 연구는 ‘잡거’의 모습을 주목했다.

사회문화사적 측면에서 서울의 일본인들이 잡거를 하였던 조선인들로는 대표적인 존재들로 ‘토막민’과 ‘하녀’를 꼽을 수 있다. 비록 이들은 같은 구역·공간 속에 있었지만 ‘보이지 않는 이웃’ 혹은 ‘일인 가정의 타자’로 구분되는 존재로 구분되고 있었다.

세 번째로 박준형(서울시립대 교수)의 ‘해방 후 ‘신생국가’ 대한민국의 나라 세우기와 소공동 일대 화교 거주지의 소멸’에서는 근대국민국가를 건설해 가는 속에서 해방 후 서울 내 외국인 거주자로 남아 있던 소공동 일대의 화교 거주지의 역사를 정리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소공동 일대는 19세기 말 이래로 화교들이 가장 많이 모여사는 곳이었으나, ‘신생국가’ 대한민국의 법제는 그들의 오랜 거주 역사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거주지 자체에 대한 면적도 제한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 ‘근대화’의 구호 속에 서울 도심부 재개발이 이루어지면서 소공동 일대는 ‘화교지구’로 구역화되었고, 그 지역은 재벌이 대신 자리잡게 되며 소멸됐다.

네 번째로 금보운(고려대 연구교수)의 ‘용산 미군기지 주변 민·군 생활공간의 교차’에서는 외인주택 건설과 미군의 거주 과정을 통해 용산 미군기지를 중심으로 한 민·군의 생활공간을 조명했다.

일제강점기부터 군사기지가 건설되어 있던 용산이 광복 이후에도 미군 기지로 선정되었다. 더욱이 미군의 기지운영 정책에 의하여 미군의 거주공간은 기지 외부로 확대되어 기지 주변 민간공간과 생활반경을 공유하며 용산에는 민과 군의 ‘잡거’가 이뤄졌다.

그 결과 용산~한남동 일대는 미군과 생활공간을 공유한 주민의 서구식 생활공간 경험 확대, 군사 매체의 교류, 생계수단의 연계가 이루어졌다. 용산 미군기지의 반환이 이루어진 지금 ‘군사공간의 민간화’에 대한 의미를 반추해 볼 시점이다.

다섯 번째로 신재준(전주교육대 교수)의 ‘한일 국교의 ‘정상화’와 일본인 집거지의 형성’에서는 동부이촌동이 과거 ‘재팬타운’이라고 불렸던 배경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1945년 약 16만 명이던 서울 내 일본인은 광복으로 감소하다가1965년 한일협정 체결 전후로 다시 상승하기 시작하여, 2020년대 이후로 등록외국인 기준 7,000~8,000명 선을 유지하고 있다.

외인아파트와 식료품상점, 일본어가 가능한 점포 등 생활환경이 갖추어져 있던 동부이촌동과 인근 한남, 이태원 등지는 일본인들이 편리성과 보안을 이유로 선호하는 지역이었다. 오늘날은 마포구 상암동 등지로 넓혀가고 있는 추세이다.

마지막으로 유슬기(서울대 강사)의 ‘혜화동 외국인 커뮤니티의 어제와 오늘’에서는 과거 ‘독일인 마을’로부터 오늘날 ‘리틀 마닐라’로 바뀌게 된 역사를 다뤘다.

조선 후기 성균관 반촌에서는 천주교 비밀 모임이 성사되었고, 이곳에 1909년 독일 베네딕토회가 백동수도원을 설립하여 학교·기숙사·성당·밭·과수원 등 생활에 필요한 것을 갖춘 마을을 만들며 ‘독일인 마을’이라 불렸다.

독일인이 떠난 자리에 혜화동성당이 설립되고 그곳에는 필리핀 천주교 신자들을 위한 미사의 장소가 되었다. 종교모임으로 시작해서 타지생활로 인한 향수를 치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그 의미가 확대되어 외국인커뮤니티 ‘리틀마닐라’를 형성했다.

≪서울 내 외국인 집단활동지의 역사≫의 가격은 1만 원이다. 시민청 지하 1층 서울책방과 온라인책을 통해서만 구매할 수 있다. 또한 ≪서울 내 외국인 집단활동지의 역사≫를 비롯한 '서울역사중점연구' 시리즈는 서울 소재 공공도서관과 서울역사편찬원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전자책으로도 열람이 가능하다.

이상배 서울역사편찬원장은 “2022년 현재 서울에서 활동하는 생활인구의 약 4.6%가 외국인으로, 이 책을 계기로 서울 속 외국인들의 활동공간에 대한 역사적 시각이 확장되기를 기대한다”라며 “앞으로도 더 좋은 '서울역사중점연구' 시리즈를 발간하도록 많은 연구자와 시민들의 관심을 부탁드린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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